[인터뷰]웬티란(김은영)평택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 담당

인터뷰

[인터뷰]웬티란(김은영)평택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 담당

후배 결혼이민자들의 정착을 돕겠다”

8년전 결혼, 고부갈등 신앙∙봉사로 슬기롭게 극복
다문화강사 양성 강좌 확대, 많은 사람혜택 필요

 

  
 
“한국생활 적응을 위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오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평택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업무 등 다문화인식개선수업 프로그램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웬티란(31.베트남 출신)씨. 그는 한국이 좋아 한국에 정착한 이상 김은영씨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웬티란씨는 평택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다문화인식개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베트남출신 결혼이주여성 6명으로 결성된 댄스팀 ‘각시들이 떴다’를 관리, 지원하고 있다. 댄스팀은 원래 12명의 팀원이 활동했는데 팀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빠지면서 현재는 6명만 남았다. 이들은 앞으로 해외공연도 꿈꾸면서 한국의 전통춤을 열정적으로 연마하고 있다.

웬티란씨는 댄스팀이 국내는 물론 정말 해외까지 나가서 한국전통춤을 공연할수 있도록 열심히 도울 생각이다. 또 베트남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결혼서류 업무, 고부.부부 등 가정문제, 출입국문제의 상담요청을 어디서든 수시로 연락이 오면 달려가서 통번역을 해 주고 그들의 고충도 함께 들어주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다. 

웬티란씨는 2006년도 한국으로 먼저 시집온 동생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의 고향은 하노이에서 3시간, 신의 선물이라는 하롱베이에서 약 1시간 거리의 ‘하이퐁’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일본기업 전자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후 서울에서 4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4년전 분가하면서 평택으로 내려와 8살, 3살 아들 2명을 키우면서 남부러울 없이 알콩달콩 인생 최대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마음고생이 컸어요. 어머니는 아들만 소중하게 여기면서 외국에서 온 며느리의 외로움을 이해해 주지 못했어요. 남편이 다행이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감싸주어서 어려운 시기를 별 탈 없이 잘 극복했어요. 힘든 시기에저는 베트남결혼이민자 통역봉사와 교회에 나가면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웬티란은 4년간 시어머니와 떨어져 살다보니 이제는 서로가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조만간 시어머니를 다시 모실 생각이다. 직장과 사회생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어서다. 

그는 고향 베트남에서 한국어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한국에서 와서는 남보다 좀 일찍 한국어를 익힐수 있었다. 결과 한국어 4급능력시험을 취득했다. 앞으로 한국어를 더 열심히 해서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사나 한국어전공을 하고 싶다.
  
 

“베트남 결혼이민자들은 저를 만나면 빨리 돈벌고 싶다면서 우선 좋은 직장을 구해달라고 요구해요. 사실은 한국어공부가 우선이죠. 한국어가 능숙해야 좋은 직장을 얻을수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어공부를 우선 열심히 하는게 좋다고 조언해 줍니다”

그는 많은 결혼이민자들이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자녀교육을 잘 시킬수 있는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자녀 또래의 한국엄마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했다.

 

힘이 된다면 이주여성 학부모들이 한국인 엄마와 친구를 맺고 같은 또래의 자녀를 키우면서 함께 고민하면서 현명한 방법을 찾아낼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웬티란씨는 또 더 많은 이주여성들이 다문화인식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다문화강사로 양성될수 있는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생활에 현재의 직장생활에 만족하면서 한국에 온것을 인생 최대의 행복한 선택이었다며 활짝 웃은 웬티란. 그의 해맑은 얼굴에서 행복감과 자신감이 물씬 묻어났다.

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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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일보 ] 김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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